씁쓸한 개그 뒤편에 하루키를 보다.... 채플린을 보다....
난 박민규빠다.
사실 그래봐야 뭐 인터뷰나 신문 기사를 스크랩한다던지 하는 일은 없지만,
아무튼 순수문학은 자주 읽을 기회를 갖지 않는 주제에 박민규의 신간이라면 일단 읽고 보니까 내 나름대로는 박민규빠라 자처할 만도 한 것 같다.
어떤 작가의 글을 좋아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박민규의 글을 좋아하는 이유를 꼽으라면 나같은 느낌을 받는 사람이 어디 한둘이겠냐만 그의 소설에서 느껴지는 마이너의 감성을 첫 손에 꼽지 않을까 한다.
마이너의 감성. 비단 박민규의 소설에서만 접할 수 있는 단면도 아닐뿐더러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그럴듯한 클라이막스를 위한 복선이나 캐릭터를 돋보이기 위한 배경으로 잘도 포장해 써먹기도 하지만, 적어도 박민규의 소설에서 나타나는 마이너의 감성에서는 날 것의 그 것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아마도, 그 날 것의 느낌은 포장하려 하는 마이너가 아니라, 재벌의 2세로 태어나지도, 천재,영재 소리 들으며 각광 받지도, 하다못해 국내에서 최고라는 일류대학을 나와 굴지의 기업에서 스카웃 제의가 들어오지도 않는, 일상을 사는 우리의 모습이 투영되기 때문은 아닐까.
게다가, 박민규의 글은 무엇보다도 재미있다.
위트가 박혀있고, 유머가 살아있다.(비록 블랙코미디일지언정)
상업성과 예술의 경계에서 고민해야 하는 것은 작가의 몫이겠지만, 대중을 향해 쏟아내는 목소리에 재미있다라는 점은 그것이 예술이든 포르노든 훌륭한 미덕이 아닐 수 없다.
무표정하게 잔인한 과거의 실연 경험을 우스개 소리로 승화시키는 개그맨의 스탠딩개그처럼 무표정 속에 실소를 자아내는 그런 유머가 박민규의 글에는 존재한다.
그런 실소 뒤에서 안개처럼 부옇게 떠오르는 냉소 또한 무표정의 개그맨처럼 상황을 극적으로 인지시킨다.
우리는 사실 생각보다 많이 패배자의 우스꽝스런 몸부림을 웃으며 열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찰리 채플린의 영화가 오로지 그의 슬랩스틱에만 의존했다면,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작품이 되었을까?
잃은 것을 되찾기 위해, 또는 가진 것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는 모습에서 우리는 박장대소하게 되고, 결국 원하던 것을 이루지 못하고 광대처럼 과장되게 슬픔을 표현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다시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발견하게 된다.
나는 그래서 박민규의 소설이 좋다.
개인적인 소감일지언정, 그의 무표정한 유머 뒤에 시퍼렇게 떠오르는 냉소는 하루키의 그것을 떠올리게 한다.
그의 우스꽝스러운 몸부림 뒤의 슬픔은 채플린의 그것을 떠올리게 한다.
사실, 박민규의 '핑퐁'이 그간 나온 몇 되지 않은 박민규의 '창작' 중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고는 할 수 없다.
아니 오히려 개인적으로는 그간 접해온 박민규의 소설 중 가장 '별로'라고 생각한다.
바로 전작인 '카스테라'와 비교해 보면 이 작가는 오히려 단편에서 더욱 가치를 발휘하는게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모든 이유를 차치하고, '핑퐁'에는 내가 박민규를, 박민규의 글을 좋아하는 모든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역시 이번에도 서슬퍼런 냉소와 실소 뒤의 씁쓸함은 마이너한 오늘을 살고 있는 어줍잖은 독자를 관통한다.
난 박민규빠다.
사실 그래봐야 뭐 인터뷰나 신문 기사를 스크랩한다던지 하는 일은 없지만,
아무튼 순수문학은 자주 읽을 기회를 갖지 않는 주제에 박민규의 신간이라면 일단 읽고 보니까 내 나름대로는 박민규빠라 자처할 만도 한 것 같다.
어떤 작가의 글을 좋아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박민규의 글을 좋아하는 이유를 꼽으라면 나같은 느낌을 받는 사람이 어디 한둘이겠냐만 그의 소설에서 느껴지는 마이너의 감성을 첫 손에 꼽지 않을까 한다.
마이너의 감성. 비단 박민규의 소설에서만 접할 수 있는 단면도 아닐뿐더러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그럴듯한 클라이막스를 위한 복선이나 캐릭터를 돋보이기 위한 배경으로 잘도 포장해 써먹기도 하지만, 적어도 박민규의 소설에서 나타나는 마이너의 감성에서는 날 것의 그 것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아마도, 그 날 것의 느낌은 포장하려 하는 마이너가 아니라, 재벌의 2세로 태어나지도, 천재,영재 소리 들으며 각광 받지도, 하다못해 국내에서 최고라는 일류대학을 나와 굴지의 기업에서 스카웃 제의가 들어오지도 않는, 일상을 사는 우리의 모습이 투영되기 때문은 아닐까.
게다가, 박민규의 글은 무엇보다도 재미있다.
위트가 박혀있고, 유머가 살아있다.(비록 블랙코미디일지언정)
상업성과 예술의 경계에서 고민해야 하는 것은 작가의 몫이겠지만, 대중을 향해 쏟아내는 목소리에 재미있다라는 점은 그것이 예술이든 포르노든 훌륭한 미덕이 아닐 수 없다.
무표정하게 잔인한 과거의 실연 경험을 우스개 소리로 승화시키는 개그맨의 스탠딩개그처럼 무표정 속에 실소를 자아내는 그런 유머가 박민규의 글에는 존재한다.
그런 실소 뒤에서 안개처럼 부옇게 떠오르는 냉소 또한 무표정의 개그맨처럼 상황을 극적으로 인지시킨다.
우리는 사실 생각보다 많이 패배자의 우스꽝스런 몸부림을 웃으며 열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찰리 채플린의 영화가 오로지 그의 슬랩스틱에만 의존했다면,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작품이 되었을까?
잃은 것을 되찾기 위해, 또는 가진 것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는 모습에서 우리는 박장대소하게 되고, 결국 원하던 것을 이루지 못하고 광대처럼 과장되게 슬픔을 표현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다시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발견하게 된다.
나는 그래서 박민규의 소설이 좋다.
개인적인 소감일지언정, 그의 무표정한 유머 뒤에 시퍼렇게 떠오르는 냉소는 하루키의 그것을 떠올리게 한다.
그의 우스꽝스러운 몸부림 뒤의 슬픔은 채플린의 그것을 떠올리게 한다.
사실, 박민규의 '핑퐁'이 그간 나온 몇 되지 않은 박민규의 '창작' 중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고는 할 수 없다.
아니 오히려 개인적으로는 그간 접해온 박민규의 소설 중 가장 '별로'라고 생각한다.
바로 전작인 '카스테라'와 비교해 보면 이 작가는 오히려 단편에서 더욱 가치를 발휘하는게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모든 이유를 차치하고, '핑퐁'에는 내가 박민규를, 박민규의 글을 좋아하는 모든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역시 이번에도 서슬퍼런 냉소와 실소 뒤의 씁쓸함은 마이너한 오늘을 살고 있는 어줍잖은 독자를 관통한다.

